상명대학교박물관 유물을 만나다 (96) 영국 로열 크라운 더비
- 작성자 박혜진
- 작성일 2019-05-15
- 조회수 20794
로열 크라운 더비 이마리 패턴 티세트와 화병
우리 박물관은 <유럽자기 특집> 네 번째로 영국의 로열 크라운 더비(Royal Crown Derby)를 소개한다.
18세기의 영국은 이미 왕실을 중심으로 외국의 우수한 도자기들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유럽 왕실들처럼 직접 도자기 공장을 세우거나 투자할 의욕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의 도자기는 왕실 후원에 의한 것이 아닌 자유 시장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장하였으며, 정치적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다른 유럽 자기 회사에 비해 체질이 견실하였다.
1745년, 첼시에 영국 최초의 연질자기 공장이 세워진 이래로 수많은 자기 공장이 등장하였다. 더비(Derby)는 1751년, 첼시의 장식가였던 윌리엄 듀스베리와 은행가 존 히스 그리고 앙드레 플랑셰가 함께 설립하였으며, 이후 첼시까지 인수하여 ‘첼시-더비(Chelsea-Derby)’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였다. 1773년, 공장을 방문한 조지 3세가 황실용 자기를 납품할 수 있도록 칙허장( 勅許狀)을 주었다. 이로써 백 스탬프에 왕관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권한을 받아 ‘크라운 더비’가 되었다.
1786년, 주경영자인 듀스베리가 죽고 난 후 우수한 도공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크라운 더비의 경영은 악화되었다. 1815년, 더비를 인수한 로버트 블로어는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우수한 도공들을 초빙하여 복고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금과 은을 대담하게 사용하는 일본 이마리(伊万里) 도자기를 모방한 재팬 시리즈(Japan Series)가 탄생하였으며 오랜 기간 동안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의 로열 크라운 더비는 1877년 오스카 스턴 로드에 새 공장이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향상된 도금 기법과 화려한 색상은 전통적인 더비 스타일에 덧붙여져 새로운 기법이 창출되었다. 1890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황실을 위한 도기 공장’이라는 영예로운 칙허를 추가하면서 ‘로열 크라운 더비’로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