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7 호 [문화] 우리는 미디어를 이용하는가, 미디어에 이용되는가?
MZ세대의 지상파 이탈
지난 8월 30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지상파 TV 방송 시청 고객 생존 분석’ 보고서를 통해 시청자가 젊은 세대일수록 지상파 방송을 이탈하는 비율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2000년대에 태어난 시청자의 방송 이탈 비중이 15.6%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1990년대 출생(12.6%), 1970년대 출생(2.7%), 1980년대 출생(2.6%) 등이 그 뒤를 이었고, 1940년대 출생이 지상파 방송에서 이탈한 비율은 0.1%로 나왔다.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가 지상파를 이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탈의 원인, ‘롤러코스터 라이프’
그 답은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트렌드코리아 2021』은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롤러코스터 라이프’라 명했다. 줄이 긴 롤러코스터를 다른 놀이기구보다 재미있다고 여겨 타고 싶어지듯,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유행하는 행위에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유행이 끝나면 미련 없이 다음 유행으로 서둘러 넘어가버리는 모습 또한 MZ세대의 특징이다. 즉 MZ세대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MZ세대의 미디어 콘텐츠 소비 행태는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줄 서기’ 단계이다. 유행에 민감한 MZ세대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일에 누구보다 빠르게 합류하고 동참한다. 챌린지나 밈이 유행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밈이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의미하며 최근에는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사진, GIF, 유행어 등 인터넷에서 문화요소로 유행하는 모든 것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렇게 유행에 동참하게 된 MZ세대는 ‘타기’ 단계에 진입한다. 줄 서기 단계에서 MZ세대가 유행시킨 챌린지나 밈은 붐을 일으키고, MZ세대를 주요 소비층으로 두고 있는 기업이나 방송사 또한 이들의 유행에 발 빠르게 참여한다. 결국 MZ세대 내의 유행이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하나의 트렌드로 확장된다. 이 트렌드는 새로운 문화와 만나며 또 다른 트렌드를 생산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MZ세대는 ‘내리기’ 단계에 이르러 미련 없이 트렌드를 떠나간다. 마치 3분이면 끝나버리는 롤러코스터처럼, 그들의 유행은 짧고 굵다. MZ세대는 다시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유행을 찾아 떠나가 버린다.
제약 많은 지상파 떠나 다양한 플랫폼으로
즉 MZ세대가 지상파를 떠나는 이유가 바로 ‘새로운 재미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실시한 ‘TV 시청 행태 관련 인식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설문 대상 중 62.2%가 지상파보다 케이블·종편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다고 답했다. 또한 지상파보다 케이블·종편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문항에 66.5%가 동의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에 “시청자에게 익숙한 작법에 의해 그려지는 이야기로 시청률을 눈에 띄게 늘리기는 힘들다”며 지상파 프로그램의 낮은 콘텐츠 파워를 지적했다.
케이블·종편뿐만 아니라 OTT와 모바일 플랫폼 또한 새로운 콘텐츠로 MZ세대를 유입시키고 있다. OTT와 모바일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방송에 대한 규제가 적다는 것’이다.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종편에게도 방송심의에 따른 미디어 규제가 행해지지만, OTT와 모바일 플랫폼은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시간과 분량에 제약이 없다는 점 또한 OTT와 케이블·종편의 장점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실시간으로 멈추거나 돌려보는 것이 가능하다. 콘텐츠 별 1시간~1시간 30분 정도로 분량이 고정돼 있는 TV 방송과 달리 모바일 플랫폼은 짧은 콘텐츠 제공이 가능하다. 짧고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이제 1시간은 너무 길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재미를 제공하는 짧은 콘텐츠, 이른바 숏폼이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숏폼의 제공이 가능한 모바일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양한 소재와 분량의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작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김태호 PD는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세상에 나쁜 콘텐츠 아이디어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며 MBC를 떠나 독자노선으로 내년부터 OTT와 협업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김태호 PD의 퇴사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상파 방송이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있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김태호 PD뿐만이 아니라 지상파 3사의 간판 PD들을 포함한 최소 6명의 PD들이 올해 방송사를 나와 OTT로 이적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이렇듯 지상파의 부진과 함께 케이블·종편, OTT, 모바일 플랫폼이 부상하다보니, 지상파 방송사가 거꾸로 하청을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도 발생했다. MBC에서 제작한 ‘먹보와 털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OTT 플랫폼 ‘넷플릭스’의 외주를 받아 MBC가 제작한 것으로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이는 강력했던 지상파의 힘이 약해지면서 플랫폼의 권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콘텐츠 생산과 소비, 미디어의 악순환
최근 미디어 업계의 이러한 흐름을 그저 지상파 방송국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어렵다. 재미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행보는 결국 ‘지나치게 자극적인 콘텐츠의 제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방범죄의 위험도 언제나 미디어의 영향력과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지난해 종편·케이블과 OTT 플랫폼에서 유행했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비지상파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JTBC의 ‘부부의 세계’는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범죄를 가해자의 시선에서 자세히 묘사했으며, 빠른 전개 과정에서 비논리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송출했음에도 불구하고 28.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TOP 10 콘텐츠’ 3위를 기록한 ‘인간수업’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범죄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미성년자와 성인 간 성매매 과정 및 성매매 알선 과정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으며, 욕설을 자주 사용하거나 대형 전투 등 폭력성이 높은 장면을 담았다.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하기에는 두 작품 모두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들을 문제의식 없이 보여주고 있다. 불륜이나 청소년 성범죄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해당 작품을 통한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부부의 세계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방송에서 밈으로 소비되며 불륜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듯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대중은, 점점 더 크고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된다. 이를 팝콘 브레인 현상이라 하는데,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첨단 디지털기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현실에는 무감각·무기력해지고 둔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기기와 미디어를 접한 MZ세대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덕현 대중평론가 또한 “빠른 전개에서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비논리적인 부분만 반복적으로 시청함으로써 그것에 길들여지고 중독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재미를 찾는 소비자를 유도하기 위해 강렬한 자극을 생산하는 미디어 업계,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져 어느덧 새로운 자극만을 소비하는 대중. 이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대중은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과연 미디어를 소비하는 주체가 될 것인가?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른 채 미디어에 사육될 것인가?
미디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우리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좋은 프로그램의 생산과 소비의 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웰메이드 콘텐츠로 굳건히 자리 잡은 케이블 방송사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가 바로 그 가능성의 사례이다. 유퀴즈는 매주 인간적인 주제를 선정하여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극적인 소재 없이 우리네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콘텐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유퀴즈는 시청률로 증명했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입소문을 탄 유퀴즈는 어느덧 전 연령 동 시간대 시청률 1~2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20대 시청률 역시 동 시간대 2위를 기록하며, MZ세대 또한 좋은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소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경쟁사 포함 138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조사한 프로그램 BPI에서도 ‘유퀴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1위, 드라마와 시사교양까지 합친 전체 프로그램 BPI에서 2위로 랭크됐다.
좋은 프로그램은 지상파에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2019년 KBS2에서 최고 시청률 23.4%를 기록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드라마라고 칭할 만큼 웰메이드 드라마라 평가받는다. 탄탄한 서사는 물론이고 시골 동네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동백꽃 필 무렵은 매주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2020년 흥행했던 SBS의 드라마 ‘스토브리그’ 또한 마찬가지다. SBS의 금토 드라마가 계속해서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탓에 그 누구도 스토브리그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더구나 스토브리그가 데뷔작이었던 신인 작가의 대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대는커녕 ‘망할지도 모른다.’는 혹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180° 바뀌었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서툴지만 단단한 삶의 이야기 등 고전적이거나 자극적인 강수 없이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묵묵히 이어갔다.
KBS는 지상파만의 강점을 발휘하는 웰메이드 콘텐츠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는 방송국 태초부터 누적된 아카이브 자료를 재가공하여 영화적으로 전달한 11부작 다큐멘터리 콘텐츠로, 4%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모두가 자극적인 콘텐츠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자극이라는 흥행요소를 과감히 제외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시청률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퀴즈, 동백꽃 필 무렵 등 좋은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은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좋은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이상, 이제 미디어 업계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우리 MZ세대를 포함한 대중들 역시 ‘우리가 왜 미디어를 소비하는가?’, ‘미디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민해야 한다. 미디어에 길들여지지 않고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 이제는 자극에서 빠져나와 ‘좋은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
윤소영 편집장, 이은영 기자, 이규원 수습기자